골프이바구
골프의역사
노신사노신사
2021. 12. 30. 09:38
한국골프의 뿌리
○ '골프장을 만들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는 1949년 8월 정부수립 1 주년 기념식장였고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폐허된 옛 군자리의 경성골프구락부의 부지에 9홀을 1950년 5월에 건설했지만 개장 2 주만에 6.25로 인하여 또 다시 폐허가 되였다.
○서울컨트리클럽의 골프코스 부지는 구황실의 재산관리인 윤우경(尹宇景)협조, 클럽하우스는 미군통신부대(첩보)로 부터 돌려받았고 건설장비는 미군과 한국군(軍),전화는 김의창(金義昌),전기는 이중재(李重宰),수도는 고재봉(高在鳳)과 민한식(閔漢植)의 협조였다.
○서울컨트리클럽의 창립은 외자구매처장실에서 있었지만 코스건설 사무는 한국은행 별관에 두었고 골프장 건설에 따른 자금염출은 이순용선생을 포함한 금융통화위원들의 중심으로 협조와 기부(寄附)로 충당되였고 외자청이 보유한 미국 원조물자인 시멘트를 공매하여 충당한 경우도 있었고 미군의 건설장비 불도저(bulldozer)를 사용했다.
○서울컨트리클럽의 코스 건설에 따른 필요 자금은 한국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의 법인회원으로 가입시켜 충당했으나 이마저 태부족하여 개인회원을 모집했는데 골프를 모르는 인사들에게도 일시불 또는 활부도 있었고 권유 받고 마지못해 매수하는자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