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草木之肅殺者, 霜也. 然肅殺所以收斂也.
物豈能長旺哉. 故非惟草木之有霜, 人亦有之.
癘疫編氓之霜也, 鞫獄搢紳之霜也, 凶荒半國之霜也, 兵燹擧國之霜也.
人之有霜, 匪惟收斂, 天以警威之也. 驕溢者, 速之.
-「醒言」
초목을 시들어 죽게 하는 것은 서리다.
하지만 시들어 죽게 하는 것은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사물이 어찌 길이 왕성할 수만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초목에만 서리가 있지 않고 사람에게도 있다.
염병은 일반 백성의 서리다.
옥사로 국문하는 것은 사대부의 서리다.
흉년은 나라 절반에 해당하는 서리고,
전쟁은 온 나라에 내린 서리다.
사람에게 서리가 있음은 거두어들이는 것일 뿐 아니라,
하늘이 경고하여 위엄을 보이는 것인데,
교만하고 방종한 자는 이를 재촉한다.
싹 터서 꽃피우고 열매 맺어 시든다.
영고성쇠의 한 사이클이 엄연하다.
서리 맞은 잎은 단풍이 들어 땅에 떨어진다.
뻗쳐오르던 기운을 조용히 거두어 원래 왔던 자리로 돌아간다.
언제고 오뉴월의 초록을 뽐내려 한다면 가을의 결실은 없다.
겨울의 기다림 없이는 봄날의 신록도 없다.
서리는 그러니까 이제 기운을 거두어 조용히 수렴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다.
이런 신호는 사람에게도 전달된다.
염병이 돌고, 옥사에 휘말리며, 흉년이 들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서리다.
그간 너무 지나쳤다,
이제는 조금 더 낮추고 가만히 돌아볼 때가 되었다고 알리는 경고음이다.
교만하고 방종한 자들은 이 소리를 못 듣는다.
아직도 오뉴월인 줄 알고 설치다가
서리 맞아 하루아침에 시들고 만다.
준비 없이 얼어 죽는다.
떠날 때를 알고 물러섬은 결코 물러섬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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