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연암 박지원의 술낚시

노신사노신사 2011. 1. 27. 09:38

연암 박지원의 술 낚시

 

 

조선 정조 8∼9년경의 일이었다. 기나긴 봄날의 해가 서산

 

에 걸릴 무렵,

 

서울 남산골에 살고 있었던 현직 승지 이모가 그 날밤 당직

 

이어서 시간을

 

 맞추어 대궐에 들어가기 위하여 북 다른 재(현재 명동 천

 

주교당)에 이르니

 

 길가의 다 쓰러져 가는 조그마한 초가집 문 앞에 팔척 장

 

신인 텁수룩한

 

노인이 망건도 쓰지 아니한 머리에 정자관(程子冠)만 삐뚜

 

름하게 얹고서

 

 마치 이승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나가는 이승지

 

의 남여(藍與)

 

앞을 가로막고 두 팔을 들어 길게 읍을 하는 것이었다.

 

 

 

이승지는 난데없이 길가에서 초면 인사가 그것도 몸차림이


나마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이었지만 인사를 받은 이상, 하는 수 없이

 

 

남여에서 내려와 답례로 읍을 하였다.

 

그랬더니 이 노인은 이승지에게 "영감 이 집이 내 집이오.

 

잠깐 들어와

 

 

수어(數語)나 합시다" 하는 것이다.

 

이승지는 첫째 그 달갑지 아니한 모양도 눈꼴이 틀리고,

 

둘째로 번(番)을

 

 들 시간도 거의 되었으므로 "지금은 공무로 입직하러 가는

 

길이니,

 

 

이 다음에 필히 심방(尋訪)하겠소" 하며 남여로 올라가려


하니 그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기세도 당당하게 승지의 길을 막으며 이승

 

지에게 하는

 

말이 "아따! 근군(近君)하는 시종신(侍從臣)이라 자세가 대

 

단하구려.

 

해가 아직 늦지 아니했는데, 담배 한대 피우고 갈 여가도 없

 

단 말이오" 한다.

 

이승지는 이 노인의 책망 비슷한 말투에 하는 수 없이 발길

 

 

을 돌려 그 집으로 따라 들어가, 저간을 살펴보니 먼지가

 

가득한 한간 방이나

 

 

윗목에는 서책이 가득하였다. 주인은 다시 승지에게 읍하고

 

아랫목에 놓인

 

 초방석(草方席)으로 인도하니 승지는 그의 말대로 그 방석

 

에 앉았다.

 

그 다음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앉았다가 안문으로 향하여 "손

 

님이 오셨으니

 

 

 술상을 내오너라" 고 한다.

 

잠시 후, 헌 누더기로 간신히 앞을 가린 여자하인이 걸죽한

 

막걸리 한 뚝배

 

기와 프르둥둥한 서산 상사발 하나와 김치 한 보시기를 모

 

떨어진 소반에다 얹어 내다놓으며 손님을 기웃기웃 쳐다


보고 나가는 것이 다. 주인이

 

그 상을 손님 앞에 놓고 뚝배기에서 상사발에다 막걸리를

 

따르면서도

 

아무 말이 없다.

 

이승지는 당초부터 주인이 하는 짓이 이상하여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마음

 

이 불안한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중인데, 그 막걸리 따르는

 

것을 보고 속 마음으로 크게 놀래어 불안하였다.

 

'저 막걸리를 먹으라고 하면 어찌한다' 하고 주인의 거동만

 

주시하고  있어  다.

 

술을 따라 놓고도 말이 없던 주인은 혼잣말로 "귀한 손님이

 

이러한 막걸리 를 자실 수야 있나 내나 마시지." 하고는


훌쩍 들어 마시고 는 김치 국을

 

 

조금 마신 뒤에 다시 한 사발을 더 부어 놓더니

 

"이것은 내 차례니 손님의 말 기다릴 것 있나?" 하고는 또

 

훌쩍 들어  마신다.


그리고 나서는 안문으로 향하여 "술상 내어가거라"

 

한다.

 

승지가 살펴보니 뚝배기 술이 원래 두 사발 밖에는 없는 것

 

이었다.

 

여자하인이 와서 상을 치운 뒤에 주인은 승지에게 다시 읍

 

하고  "영감

 

대단히 미안하오. 오늘 영감이 내 술 낚시에 걸렸소. 바쁘실

 

텐데 어서 가십시오." 한다.

 

이승지가 답례를 하며 "도대체 노인은 누구이시며 술 낚시

 

라는 것은 무슨  말씀이오." 하고 물었다.

 

승지의 물음에 대하여 주인은 껄껄 한바탕 웃고 나서 "술 낚

 

시꾼 성명은 알아 무엇하겠소.


내 집이 가난하고 내가 술을 좋아하므로

 

가속이 간신히  반주 한잔씩은 준비하여 주나 다시는


아니 주고 손님이 오 셨다면 손님

 

 

술 대작할 한 잔을 내보내 주는구려. 오늘도 저녁에 술 생각

 

이 간절하였으 나 얻어먹을 방법이 없고 보니 통정할 수


있는 친구가 혹 지나치면  들어 오라 하여 술을 낚아 낼까?


하고 문 앞에서 기다렸으나 오늘은 아무도 못

 

 

 만났기에 해는 저물어가고 해서 초조하여지는데, 마침 영

 

감이 지나가시니

 

 인급계생(人急計生)이라고 내가 영감을 내 집으로 유인

 

하 여 집에만 들어

 

오시게 하면 내 계획은 달성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불고체면

 

하고 인사를 청한 것이나 인사를 아니 받으셨다면 모르겠


거니와 받은 이상에는 초면 친

 

구를 괄시는 못하는 것이라 꼭 따라 오실 것이 아니오. 나는

 

이 방에 손님이 있는 것만 보이면 술은 마실 수 있거든요.


아까 계집하인이   기웃기웃한 것은 전에 내가 없는 손님을


 있다 하고 술을 낚는 일이 있 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손님 술을 내왔다가도 손님이 없으면 도로 가져

 

가는 구려. 그래

 

 참말로 손님이 있나 없나 보아 없으면 도로 가져가려고 기

 

웃거린 것이오

 

. 오늘의 이 신기 묘산이 적중하였으니 누추한데 오래 앉아

 

계실 것이 없소. 어서 가시오." 하며 문 밖까지 전송을 하여


주는 것이 었다.

 

그 집에서 나와 다시 남여를 타고 대궐로 향하는 이승지는

 

방금 자기가 당한 일이 맹랑하기도 하였거니와 그보다도

 

술꾼의 술 낚시 질의 이용물

 

노릇을 한 것이 지극히 분하였다. 그 날밤 승정원에서 이승

 

지와 함께 번을  들은 승지 남공철이 이승지의 안색이


좋지 못함을 보고 "


오 늘밤에는

 

영감의 기색이 좋지 못하니 댁에 무슨 연고가 생겼소?"

 

하자.

 

이승지는 쓴웃음을 지으며 "집에는 별 일 없지만 오는 길에

 

서 괴상한 일을  당하였기 마음이 편치 못하오." 하면서

 

오는 길에 당한 일을 이야기 하였다.

 

그때에 승정원 내시가 나와 상감마마께옵서 입직한 승지를

 

부른다고 한다.

 

승지가 명에 의하여 어전으로 입시하니 정조가 하교하되 "

 

오늘밤은 하도

 

 심심하기에 시종신들과 한담으로 소견할까? 하여 부른 것

 

이다." 하며 옥당 들의 주담(奏談)이 끝난 뒤에 두 승지를


 바라보시며 "너희 들도 말을 해보아 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승지가 "오늘 번들어 오는 길에 당한 일을 말하려

 

고 했으나 비설 (鄙屑)하여 못 아뢰나이다." 하니

 

정조는 "군신의 사이는 가인 부자와 같으니 친구에게 말하

 

려던 것을 임금 에게 어찌 말 못 할 것이냐. 본대로 당한


대로 말하라"  하신다.

 

이에 이승지는 오늘 입궐하러 들어오다가 북 다른 재에서

 

당하였던 일을  자세히 아뢰는 도중 "술을 따라 놓고도


권하지 않더라……"

 

는 구절까지  이르렀을 때,

 

정조가 빙그레 웃으시면서 "그 정도만 들어도 나는 그 사람

 

이 누구인가를  짐작하겠다" 고 하신다.

 

이승지가 그 다음 일을 다 아뢴 뒤에 "신은 그 사람이 실성

 

한 사람일 것으 로 생각됩니다" 하고 부언하니,

 

정조는 다시 웃으시며 "그 사람이 실례한 것이 아니라. 네가

 

몰지식하다

 

. 너는 문과도 하고 벼슬도 하였으나 사책에 오르지 못하되

 

그 사람은  지금 방달한 미친 사람 비슷하지만 사책을


빛낼 사람이다.

 

그 사람이 정녕코 박지원일 것이다" 하시니 이승지는


자기가 고루하여 문 봉으로 일세를

 

능가하는 연암선생 박지원을 못 알아 본 것이 부끄러워 얼

 

굴을 붉히며  물러 나왔다.

 

그 옆에 시립 하였던 남공철이 다시 부복하여 아뢰기를 "전

 

하의 지금 하교 를 듣자오니 옛말의 지신막여군


(知臣莫如君)이 적실한 말 씀이외다. 성명

 

지치(聖明之治)에 아래에 그런 사람이 봉초(蓬草)에 매몰되

 

면 옥의 티같이  성루가 될까 합니다.


이미 통촉하셨으니 유현(遺賢)의 탄이 없으시길 바랍

 

니다" 하였다.

 

정조가 남승지에게 이르기를 "내가 유현을 하려는 것이


니라, 박지원의

 

 문장이 섬부(贍富)는 하나 정도로 아니 나가고 권도로 나가

 

므로, 그 버릇 을 징계하려고 모른 체하였으나, 그 정도로


기한(飢寒)에 빠 진 것을 몰랐 다." 하시고,


즉시 박연암을 불러 초임을 시키시고, 일년 이

 

내에 안의(安義)  현감을 제수 하셨다.

 

박연암은 소년시절에 경제문제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허용을 아니하니 다시 문장변으로 들어가서 400년여를 내

 

려오던 고문사체 를 개혁하려 하니 박제가, 이덕무, 김매순


 등이 다들 그의 문도라, 이고증

 

(泥古症)에 걸린 당시 문사들이 연암을 이단이라고까지 지

 

목하고 정조에게  박지원은 세상을 버려놓은 사람이라고


아뢰어 정조도 연암 을 미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박연암은 자기의 초지를 그대로 굳게 지키어 흔들리

 

지 아니하였으며, 그 부인도 남편이 세상에 나서지 못하는


것이 본뜻을 지 키기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바느질품도 팔고 갖은

   

고초를 당하여 가며 밤에 글 읽을 때 쓸 초와 좋아하는


술은 조금씩 이어주되 술의 거성 인 연암을 만족하게까지


할 재력은 없으므로 매일 한 두 잔  정도의 술도

 

그 부인이 진심 갈력으로 대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술 생각이 나기만 하면 연암은 가끔 그러한 행동을 하였던

 

것이며,

 

그 날은 공교롭게도 입직할 승지에게 걸리어 큰 출세는 못

 

하였어도 그토록  좋아하는 술의 해갈만은 면할 수 있는


길이 정조에 의하여  마련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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