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

숙종과 갈처사 명당애기

노신사노신사 2019. 10. 30. 10:58

 

 

숙종 임금에 대한 정치적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숙종 임금은 누구보다 백성을 아꼈던

위대한 성군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조대왕과 더불어

조선 역대 왕들 중 가장 암행 (임금이 정체를

감추고 민간을 시찰하는 것, 민정시찰이라고도 함)

을 많이 했던 임금이기도 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숙종이 수주(지금의 수원)로

암행을 나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숙종이 수원 어느 고을을 지나던 중

한 젊은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옆에 관을 두고 구슬피 울면서

냇가 옆에 땅을 파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숙종 임금은,

"이보게, 자네는 어찌 하여 냇가 옆에

땅을 파고 있는 것인가?"

하고 물었습니다.

"간밤에 저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 고을의 유명한 지관인 갈처사라는

분께서 이곳이 명당이니 반드시 이곳에

묏자리를 잡으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머니를 뫼실 땅을

파고 있는 것입니다만...

제가 비록 풍수지리의 풍 자도 모르는

문외한이라 하나 물가 옆에 묏자리를

잡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이야기입니까.

허나 그분이 워낙 유명한 지관이신지라

무슨 곡절이 있겠거니 하며

이렇게 땅을 파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숙종 임금은 대노하였습니다.

어떤 고약한 자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우롱하는 것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숙종 임금은 그 즉시 함께 나온 내관을 시켜

수원부사에게 보내는 서찰을 작성하고,

그 젊은이에게 그 서찰을 주며 수원부사를

찾아가 보여주라고 말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웬 젊은 선비께서 자신을 딱하게

여겨 자신의 사정을 수원부사에게 전하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며 그 즉시 수원 현청으로

가서 부사에게 그 서찰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부사가 갑자기 서찰에 절을 하며

젊은이에게 쌀 300석을 내리도록

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근의 유명한 지관을 불러

젊은이의 모친을 모실 가장 좋은 명당을

찾아주도록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젊은이는 그 젊은 선비가 임금이었음을 알고

대경실색하였습니다.

임금이 자신에게 갈처사의 처소를 믈었으니

필시 갈처사를 찾아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후였습니다.

젊은이에게 서찰을 써 준 숙종 임금은

그 즉시 갈처사에게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숙종 임금이 향한 곳은 고을 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외곽 산기슭 인근에 있는

매우 허름한 오두막이었습니다.

숙종 임금은 오두막 앞에서 갈처사를 불렀습니다.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그러자 잠시 후 초옥의 방문이 열리더니

매우 볼품 없고 꾀죄죄한 형색의

초라한 노인 한 명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대가 갈처사인가?"

"나를 그렇게들 부르오만,

젊은 선비께서는 뉘시오?"

"네 이놈, 네 어찌 불쌍하고 가엾은 백성을

우롱하여 민심을 어지럽힌단 말이냐!!"

숙종 임금은 갈처사에게 추상 같이

호통을 치며 꾸짖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시오?"

"네 어찌 어미를 잃어 상심한

가엾은 청년에게

흉당 중의 흉당인 냇가 터에 묘를 쓰라고

일러주었는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갈처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보슈, 선비 양반.

뭣도 모르면 가만히 계시오.

그 자리는 명당 중의 명당이외다."

"네 어찌 나를 기만하는 것이냐.

 

내 비록 풍수를 잘 알지 못한다 하나

그곳에 관을 묻으면 필시

묘에 물이 흘러들 것이 자명하거늘,

어찌 하여 그곳이 명당이란 말인가!!"

"거 뭣도 모르면 가만히나 계시라니까.

그곳은 관이 묻히기도 전에 쌀 300석과

햇빛이 잘 드는 명당 중의 명당인 묏자리를

얻게 되는 터란 말이오.

그러니 그곳이 명당이 아니면 뭐란 말이오?"

갈처사의 말은 들은 숙종 임금은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가 갈처사를 찾기 바로 직전에 서찰을 통해

수원부사에게 명한 것을 갈처사가 그대로

입을 통해 말을 했으니 말입니다.

이에 갈처사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숙종 임금은 자세를 고쳐 잡으며

갈처사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눈이 없어 고인을 몰라 뵈었구려.

헌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능력이

매우 출중한 것이 분명한데,

어찌 하여 이리 초라한

묘옥에서 지내고 있단 말이오?

 

그대의 능력이면 충분히

엄청난 재물을 모을 수 있을 것이거늘.."

그러자 갈처사는 다시 한 번 피식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선비께서 또 뭘 모르고 말씀을 하시는구려.

내가 사는 지금 이 집은 명당 중의 명당이오.

내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으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 산들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오.

이곳이 비록 초라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곳은 훗날 이 조선의 군왕께서 찾아오실

명당 중의 명당이란 말이오."

이에 속으로 다시금 놀란 숙종 임금이

넌지시 갈처사에게 물었습니다.

"허허, 그렇구려. 그렇다면 군왕께서 언제쯤

이곳에 친히 왕림하실지도 알 수 있소?"

그러자 갈처사가,

"내 언젠가 날을 받아두었는데 이제 늙었는지

깜빡깜빡하는구려. 잠시만 기다리시오.

내 언제인지 날을 다시 한 번 받아보리다."

라고 말하면서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갈처사가 맨발로 방 안에서 후다닥

뛰어나오며 숙종 임금 앞에 오체투지를 했습니다.

"주상전하~ 이 미천한 것이 감히

이 나라의 군왕을 몰라뵙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무례를 저질렀나이다.

부디 이 미천한 것을 죽여주시옵소서~!!"

이에 숙종 임금은 기분 좋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친히 갈처사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켰습니다.

"아닐세. 내 오늘 그대를 만나게 된 것 또한

하늘의 뜻인 것 같구만.

내 오늘 자네의 신묘한 재주를 보니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하나 생겼네."

"무엇이든 하명하시옵소서."

"내 훗날 명을 달리 하게 될 때를 대비하여

좋은 곳에 내 묏자리를 정해두고 싶은데

내가 누울 명당을 하나 알려줄 수 있겠는가?"

"군왕의 명이신데 어찌 감히 불응하겠습니까.

성군으로 이름 높으신 주상께 저의 미천한

재주가 미약한 도움이나 될 수 있다면 이는

삼생의 영광일 것이옵니다."

그러면서 갈처사는 숙종 임금께 명당이 될

묏자리를 알려주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 숙종대왕과 인현왕후의 쌍릉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는 서오릉입니다.

그 서오릉 중에서도 숙종대왕과 인현왕후의

쌍릉이 위치한 곳은 가장 명당 중의 명당인

명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일설에는 이후 장희빈이 숙종 임금과

갈처사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갈처사를

찾아가 자신이 묻힐 명당을 하나 부탁했으나,

"폐비가 되어 사약을 받아 죽을 당신에게

명당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라는 말을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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